수백만 명이 잘못된 생활 습관과 해로운 음식과 음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고 병든 사람들의 외침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잘 보여준다. 의학 연구에서의 놀라운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건강과 장수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성경은 조기 장애와 사망에 대한 질문에 간결하게 답을 제시한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나오는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부지런히 듣고 그 보기에 의를 행하며 그의 명령을 청종하고 그의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이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네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는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말씀은 누구나 실제로 자신의 장례식을 늦출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건강과 식단에 관한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함으로써 질병을 완화하거나 완전히 피할 수 있다. 성경의 이 구절을 보면 전염병으로 인한 재앙이 수백만 명을 무덤으로 쓸어버리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분은 우리가 잘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하기를 원하신다.
그럼 오늘날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고통과 질병이 존재할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다수가 자신의 존재 법칙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이 확실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우리 몸에도 예측 가능한 확실한 법칙이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지면 중력의 법칙이 즉시 적용된다. 나이, 성별,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져 다치거나 죽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몸의 법칙을 어기면 질병이나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일으키게 된다.
결과에는 항상 원인이 있다. 하나님의 조언과 오늘날 전세계의 건강의 흐름을 진지하게 연구한 사람들에게 미스테리란 없다. 전문가들은 암이 계속 증가하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 한다. 많은 질병이 크게 감소하고 일부는 완전히 제거되었지만, 암은 급증하고 있다. 전례 없는 자금 지원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치명적인 악성 종양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획기적인 돌파구는 거의 없다.
미국의 흡연 관행을 통해 폐암이 꾸준한 증가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치명적인 독을 마시는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단순한 도덕적인 용기를 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인체에 발생하는 모든 암의 3분의 1이 위장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든 암의 절반은 간, 췌장, 소장, 결장 등 소화 기관에서 발생한다.
위암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뜨거운 담배 타르에 노출되는 폐를 제외하고, 위는 신체에서 가장 많이 학대 받는 장기이다. 미국 암 협회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제임스 유잉 박사는 '암 예방'이라는 제목의 소책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상적인 위를 지속적으로 학대하면 암이 자주 발생하고, 비정상적으로 약한 위는 학대를 덜 받아도 같은 운명을 겪을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남용과 과기능이 흥미로운 원인으로 간주된다. 위는 구리가 줄지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섬세한 상피 세포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이러한 데이터에서 도출할 수 있는 유일의 안전한 결론은 이 매우 흔한 질병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을 줄이려면 모든 형태의 위장 혹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남성, 여성 그리고 어린이의 위 속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보는 것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자아낸다. 맛이 있는지, 아니면 식후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기는 지의 여부가 가장 큰 기준처럼 보인다. 인구의 50%가 비만으로 고통 받고 있고 매년 다이어트와 운동 기구에 3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놀라운 사실은 미국인이 매년 평균 1,488파운드의 음식을 소비하는데,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미국 병원을 매일 가득 채우는 150만 명의 환자에게 치명적인 요인이다. '죽음(DEATH)'이라는 단어의 5분의 3이 '먹다(EAT)'라는 단어라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폴 브래그는 그의 유명한 요리책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으로 매일 스스로를 중독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으로 먹는다. 음식이 맛있어 보이면 그것이 건강에 좋은지 아니면 죽음을 야기하는지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시간을 들여 음식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태어날 때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보통 사람들은 진정한 자연 식품의 맛을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의 작고 민감한 미뢰는 여러 세대에 걸쳐 부자연스럽고 인공적으로 조미료가 첨가된 자극적인 음식에 오염되어 우리들 대부분은 자연 식품의 섬세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 음식은 문명인들의 매력을 끌기 위해 조리되고, 으깨지고, 삶아지고, 조림으로 만들어지고, 구워지고, 향신료를 추가하고, 소금에 절여지고, 크림을 추가하고, 건조되고, 구이로 만들어지고, 튀겨지고, 기름칠되고, 후추와 식초가 첨가되고, 훈제되고, 분쇄되고, 말아지고, 발효되고, 설탕과 양념이 첨가되고, 껍질이 제거되고, 채로 썰어지고, 찜과 조림이 되고, 색소와 기타 조미료들이 사용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문명화된 인간은 조물주가 제공한 음식에 만족하지 않고, 먹기에 적합하다고 느끼기 위해 미리 무언가를 해야한다." 라고 덧붙인다.
미국에서 매일 25톤의 아스피린이 소모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내셔널 옵저버에 따르면 미국 내 모든 남녀노소가 매일 2¼정씩 복용한다. 오늘 당신이 2¼ 정을 먹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가 두 배의 양을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이상한 역설 중 하나는 건강 분야에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어떤 적보다 질병을 두려워하지만, 질병이 발생하기 전까지 건강을 돌보기위해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1년 동안 미국인들이 지출한 의료비 중 95%는 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고, 5%는 예방 의학에 사용된다. 이해가 안되지만 이 분야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것 같다.
이 상황은 스페인에 있는 유적지 중 한 곳을 방문한 한 무리의 관광객들을 생각나게 했다. 절벽 위에는 그들이 방문하고 싶었던 고대 수도원이 있었다. 그곳에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도승 몇 명이 도르래에 매달린 바구니를 당겨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수도원을 둘러본 후 그들은 절벽 옆으로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내려가기 위해 바구니에 올라타는데 밧줄이 다소 닳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담당 수도승에게 "밧줄은 얼마나 자주 교체하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당연히 끊어질 때마다 교체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바구니에 실려 내려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는 답이다.
점점 더 많은 의학 연구자들이 우리의 식단이 건강 상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우리 몸이라는 기계는 실제로 우리가 공급하는 연료로 구성된다. 신경, 뼈, 혈액 및 세포의 질은 좋은 영양과 적절한 식단에 달려 있다. 이 오래된 격언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다 : “수백만 명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 몸을 만드신 창조주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 없이 우리를 남겨두지 않으셨다. "그런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언제 우리 신체 시스템에 공급하는지와 같은 사소한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섬세한 인간의 기계를 만들어 놓고 혼자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분은 창조 과정이나 제품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19, 20). 이 내용은 우리 몸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것이 영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요구 사항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우리 몸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관리하는 관리인일 뿐이다.
어떤 사람도 "내 몸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다"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영이 거하는 곳인 거룩한 곳(성전) 이라는 신성한 목적을 어김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할 수 있다. 바울은 교회와 성도 개개인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3:16, 17). 이 구절은 하나님의 소유를 더럽히면 영원히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일반적인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보다 닭장 안의 닭이나 집안의 개가 필요로 하는 신체적 필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자신의 가족의 신체적 필요보다 자동차의 필요성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이 중요한 몸을 돌보는 방법에 대해선 왜 그렇게 무지한 것일까? 성경은 인간의 몸을 성경에 명시된 규칙에 따라 돌보고, 보존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 단지 자신들의 식욕을 따른다는 것이다.
성경은 몸을 돌보고 먹는 것에 대해 어떤 지침을 제시하고 있을까? 하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쓰고 배부르지 아니한 것을 위하여 수고를 하느냐? ... 너희는 좋은 것을 먹으라"(이사야 55:2)고 말씀하신다. 무엇이 좋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맛이나 광고, 화려한 라벨을 보고 알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욕의 법칙에 따라 TV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소리로 선전하는 상품으로 식료품 바구니를 채운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미각과 시각에 호소하는 모든 것을 수집한다. 어린 아기 새가 엄마가 먹이를 주면 무엇이든 입을 벌리듯, 속기 쉬운 소비자들은 미디어 판매자들의 선택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이는 몸을 만드실 때 연료와 유지 관리를 포함한 구체적인 작동 설명서도 주셨다. 창세기 1장 29절에 "보라 내가 온 지면에 있는 씨 맺는 모든 풀과 씨 맺는 나무의 열매인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었나니 너희가 먹을 것이 되리라"라는 구절에 주목하라.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다. 견과류, 과일, 곡물, 채소는 여전히 최고의 영양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식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완벽한 하나님이 태초에 그가 창조한 완벽한 몸을 위해 명한 이상적인 채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죄의 저주가 커지면서 우리 몸은 크기와 체력이 모두 저하되었지만, 어떤 주장이나 과학적 자료도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정한 지혜에 도전할 수는 없다.
이제 현대인들이 원래 조리법의 단순함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주목해보라. 오늘날 일반인의 식탁에는 육류 단백질, 탄수화물, 밀가루 빵, 과자류가 가득하다. 태초에 하나님은 육류의 사용조차 허용하지 않으셨다. 홍수로 인해 모든 식물들이 사라진 후 처음 육류가 인간의 식단에 허용된 것으로 보이며, 그 중에서도 특정 육류만 허용되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렇게 지시하셨다. "모든 깨끗한 짐승은 암컷과 수컷 일곱 마리씩, 깨끗하지 않은 짐승은 암컷과 수컷 한 마리씩 데리고 들어가거라. 하늘의 새도 암컷과 수컷 일곱 마리씩 데리고 들어가거라. 그래서 그들의 종자를 온 땅 위에 살아 남게 하여라." (창세기 7:2 / 쉬운성경).
깨끗한 동물과 깨끗하지 않은 동물의 법칙은 인류 역사의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만 깨끗하지 않은 동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노아 시대에는 유대인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구분은 분명히 존재했다. 방주에는 왜 깨끗한 동물이 더 들어갔을까? 홍수로 모든 풀과 나무들이 사라지게 되었고, 처음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깨끗한 고기만 허락되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깨끗하지 않은 동물을 먹었다면, 암수 한쌍만 보존되었던 그 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방주 안에는 깨끗한 일곱 쌍의 동물이 있었다. 그들만이 종족의 지속성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도 식용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일부 부정했던 동물들은 깨끗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깨끗한 동물과 깨끗하지 않은 동물의 경계는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궁금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레위기 11:3-11에는 요구 사항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굽이 완전히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짐승은 먹어라. 되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거나, 굽은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짐승은 먹지 마라. 낙타는 되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다. 낙타는 너희에게 깨끗하지 않다. 오소리도 되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다. 오소리도 너희에게 깨끗하지 않다. 토끼도 되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다. 토끼도 너희에게 깨끗하지 않다. 돼지는 굽이 완전히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은 하지 않는다. 돼지도 너희에게 깨끗하지 않다.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마라. . . 이런 짐승은 너희에게 깨끗하지 않다. 물에서 사는 것 중에서 너희가 먹어도 되는 것은 이러하다. 바다나 강에서 사는 동물 가운데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먹어라. 그러나 물에서 사는 고기 떼나, 물 속에서 사는 다른 모든 동물 가운데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바다에 살든지 강에 살든지 모두 피하여라. 너희는 그런 고기를 먹지 마라." (쉬운성경).
사탄이 하나님이 먹지 않도록 한 바로 그 음식에 대한 식욕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는가? 하나님의 식생활 원칙을 어긴 후 전염병이 뒤따른 것이 놀라운 일일까? 금지된 돼지고지는 지나친 식욕이 하나님의 합리적인 제한을 어떻게 무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이다. 다른 깨끗하지 않은 부류와는 달리 돼지고기가 식품으로 전혀 부적합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넘치게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돼지고기에는 트리키나라는 미세한 기생충이 있는데, 이 기생충이 체내에 들어가면 선모충증이라는 질병이 발생한다. 미국 정부는 이 기생충에 대한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리더스 다이제스트 기사에서는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돼지고기는 안전하지 않은가?"라는 제목으로 선모충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완전한 돼지고기를 단 한 입만 먹어도 사망하거나 불구가 될 수 있으며, 평생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이 독특한 질병인 선모충증은 치료법이 없다. 기생충을 막을 수 있는 약물이 없기 때문에 기생충은 인체 근육 조직 전체로 퍼질 수 있다."
"감염의 정도에 따라 두 가지 중 하나가 발생한다. 사망에 이르거나 기생충을 둘러싸는 낭종을 만드는 데 성공하여 수년 동안 휴면상태로 살아 있게 된다. 의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최고의 의사라 할지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의 체력을 보존하고 나타나는 고통스러운 국소 증상을 완화하는 것 뿐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1950년 3월호 기사).
이러한 증상이 무엇인지 일반인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선모충증은 거의 모든 다른 질병과 어느 정도 유사할 수 있다. 팔이나 다리의 통증은 관절염이나 류머티즘일 수도 있고 선모충증일 수도 있다. 허리의 통증은 담낭염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선모충증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선모충증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한 워싱턴 주 보건 당국자 사무엘 굴드 박사는 평균적인 미국 소비자는 평생 동안 최소 200번 이상 선모충에 감염된 돼지고기를 섭취한다고 말한다. 육류에 “정부 검사 통과"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고 해서 선모충 감염 검사를 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 확인하려면 돼지고기의 모든 부분을 현미경으로 검사해야 한다.
공중 보건 서비스는 소비자에게 트리키나 벌레를 죽이기 위해 돼지고기를 완전히 익히라고 조언 한다. 누군가는 죽은 벌레를 먹는 것도 미각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관찰했다. 그 행위를 하나님은 깨끗하지 못하고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부르셨다. 왜 기독교인들은 식욕에 대한 왜곡된 욕망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돼지를 먹어서는 안 되는데 왜 하나님이 돼지를 창조했는지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돼지는 땅돼지, 뱀, 하이에나와 함께 지구의 오물과 쓰레기를 치우는 훌륭한 청소부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 모두를 인간의 시스템에 음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혜로 그것을 다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조언은 모든 의심이나 의문을 넘어서 그것들을 보여주신다.
신이 구약의 율법을 만든 이후 위생 상태가 개선되어 돼지를 먹어도 괜찮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지나 바다 동물의 오염이 덜해졌다고 믿기 어렵다. 오늘날 육지, 바다, 대기를 감염시키는 화학 독극물은 놀라울 정도로 많아서 정부의 지속적인 지침이 내려지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은 자연의 모든 질서에 치명적인 살충제, 살충제 및 기타 오염 물질이 대량으로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매시간 알려준다.
이성으로도 깨끗하지 못한 동물이 여전히 부정하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보아라. 여호와께서 불에 싸여 오신다. 여호와의 군대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온다. 여호와께서 진노와 징계의 불꽃으로 그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니, 많은 사람이 여호와께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백성이 자기 몸을 '거룩'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 헛된 신을 섬겼다. 무리를 지어 동산에 들어가 돼지고기와 쥐와 갖가지 역겨운 것을 먹었다. 그들은 모두 멸망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사야 66:15-17 / 쉬운성경).
이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오실 이 땅의 마지막 날까지도 그 동물들의 본성이 먹기에 적합하도록 변화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한다. 돼지는 혐오스러운 짐승, 쥐 와 같은 범주에 속하며, 하나님은 그것을 먹는 자들이 "함께 먹힐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신다. 이 경고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조개류와 기타 해산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일 만한 건전하고 과학적인 이유가 있을까? 이 생물들이 주로 물속의 하수와 오염 물질을 먹고 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1972년 9월의 프리벤션 잡지에는 "조개류는 더럽고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듯 보였지만, 이 민감한 주제에 대해 진실을 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조개는 즙이 많고 맛도 좋으며 영양가도 높습니다. 하지만 연체 동물의 특성과 서식지의 하수 같은 오염 때문에 조개류가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사람들이 즐겁게 삼키는 것 같아도, 양심에 따라 조개류를 피하라고 조언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결과의 날이 올 것입니다.”
조개류가 왜 그렇게 위험한가? 그 이유는 조개류는 그들이 서식하는 더러운 바닷물보다 몇 배나 더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연안 지역의 하구에서 서식하고 번식한다. 이러한 하구는 특히 교외 주택 배수구와 농업 유출수에서 발생하는 하수, 폐수 및 기타 수인성 오염의 배출에 취약하다." 서식지의 오염은 위험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조개류가 여과 장치라는 사실은 위험을 더욱 가중시킨다.
"예를 들어, 굴은 음식을 얻고 흡수하는 방식 때문에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주변 바닷물의 20~60배까지 농축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좋아하는 식당의 메뉴에 동물성 식품이 배설물과 함께 제공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해산물은 예외다. 해산물은 장과 함께 통째로 제공된다."
이런 음식을 별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산물 섭취로 인한 간염 발병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해산물들은 하수를 먹여 양식되고, 판매된다. 이 질병은 사람에서 연체 동물로, 그리고 다시 사람으로 순환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그 분의 창조물에 대한 건강과 행복에 대한 사랑의 관심을 인정해야 한다.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법칙들을 불신하는 이들은 결국 불순종이 초래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겪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타협의 시대에 대부분의 주요 종교 단체는 사교적 음주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완전한 금주에서 이제는 절제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술에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에 있어 양조업자들이 취하는 것과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이것이 알코올 음료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안전한 자세일까? 통계에 따르면 음주를 시작하는 10명 중 1명은 알코올 중독자 또는 문제 음주자가 된다고 한다.
많은 기독교인은 성경이 적당한 음주를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주로 성경에서 "와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근거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권장하는 와인은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다. 포도주라는 단어는 발효 또는 비발효 음료에 사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새 포도주가 포도송이에서 발견되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을 멸하지 말라 그 안에 복이 있나니 내가 내 종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을 멸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65:8)고 선언하셨다.
이 포도송이의 와인은 포도나무의 신선한 과즙이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축복이 있다고 선언한 유일한 와인이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게 만드는 발효된 독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 성경은 "포도주는 조롱하는 자요 독주는 성난 자요 이에 미혹되는 자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니라"(잠언 20:1)고 선언한다. "너는 포도주가 붉을 때, 잔에 그 색을 낼 때, 스스로 움직일 때 포도주를 보지 말라. 마지막에는 뱀같이 물고 독사 같이 찌르느니라." (잠언 23:31, 32 / 쉬운성경).
그러면 예수님은 구약성경과 반대되게 물을 알코올 포도주로 바꾸셨을까? 그렇게 하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다. 그분이 만드신 포도주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였다. 우리는 알코올이 신체에 미치는 실제 생리적 영향을 알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중독은 뇌에서 산소가 부족한 과정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산소 부족현상은 뇌 세포를 파괴하여 궁극적으로 의식적 사고의 추론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몸을 창조하신 예수님이 도덕적 억제력을 약화시키고 효과적인 결정의 힘을 감소시키며 결국에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신성한 몸을 파괴하는 것을 용납하셨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담배 사용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죄인가? 우리 몸의 특허에 대한 진실을 부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거룩한 몸인 성소를 더럽히는 모든 것은 죄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자들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보다 덜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죄이며, 어떤 그리스도인도 그것을 자신의 몸에 넣어 생명을 함부로 단축해서는 안된다.
비소나 스트라이크닌을 아주 적은 양이라도 섭취하는 것에 대해 고려하는 교인은 거의 없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것을 섭취한다. 담배 타르는 폐의 연약한 막을 천천히 둘러싸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고의적으로 담배의 독성 연기를 흡입하여 누적된 효과가 사망에 이를 때까지 흡입하는 것은 똑같다. 그것은 할부 계획된 자살과 같다. 하나님의 재산을 취하고 관리인의 직분을 위반하며 그분의 소유물을 강탈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제 담배로 인한 돈 낭비에 대해 말해보자. 흡연자가 매달 10만원 이상을 흡연에 지출한다면 은퇴 시점이 되면 이 금액은 5천만원 이상에 달한다(대한민국 기준). 사회보장제도가 무너지더라도 노후를 보장하기에 적절한 금액이다. 그러나 그 돈을 담배에 낭비하는 많은 사람들은 돈 한푼 없이 복지나 친척에 의존하며 삶을 마감한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하나님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멸망한다"(호세아 4:6)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하다. 차라리 5천만원 다발을 쌓아놓고 불에 태우는 것이 적어도 생명을 파괴하지 않는 점에서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특별히 영적 목적을 위해 창조된 육체와 정신을 모독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몸을 돌보는 방식에 대해 하나님께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 원칙이 성경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오늘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소홀히 함으로써 생기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피하기 위해 건강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성과 현명한 판단만으로도 균형 잡힌 식단과 운동 프로그램에 대한 충분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때때로 논리와 과학적 증거는 식욕, 사회적 관습, 중독과 엄청난 충돌을 일으킨다. 카페인이 대표적인 예이다. 카페인을 건강의 적으로 지목하는 연구 내용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카페인은 강력한 습관을 형성하는 약물로 수백만 명을 중독의 늪에 빠뜨린다. 많은 사람이 흡연이나 음주를 끊는 것만큼이나 카페인 음료를 끊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카페인은 심장, 위장, 신경, 심지어 임산부의 태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에는 카페인 함량 외에도 또 다른 유해 성분인 탄닌산이 함유되어 있다. 이 강력한 화학물질은 가죽 염색에 사용된다. 카페인 음료의 설탕 농도의 해로운 영향은 식단에서 설탕을 제거해야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한다. 정제 설탕의 살인적인 효과는 청량음료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모든 사람의 건강을 위협한다.
직장에서 비서나 상사가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식탁에 앉아 있거나, 커피 한 잔을 또는 코카콜라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커피(또는 콜라)를 마시지 않으면 두통이 생긴다"는 그들의 공통된 이유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카페인은 몰핀 한 알의 10분의 1 정도로 두통을 제거한다. 일시적인 진정 효과는 통증을 가라 앉히지만, 매일 복용하면 섬세한 신경 종말이 마모되어 신경이 더 뒤죽박죽이 되고 점점 더 많은 진정제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 약물 노예의 가장 한심한 증거는 임산부에게서 찾을 수 있다. 알코올, 담배 및 카페인이 태아에게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입증하는 모든 의료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산 부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몸 속에 독을 쏟아 붓고 있다. 화학 독극물에 대한 비뚤어진 탐닉으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기꺼이 위험에 빠뜨리는 여성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떻게 그렇게 고의적으로 아이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미국 사회에서 마약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도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탐닉할 수 있는 잘못된 것을 조금씩 줄이려고 하지 않도록 하라. 그것은 효과가 없다. 개를 돌보는 일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 개 꼬리를 매번 조금씩 자르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더 고통스럽다. 습관은 습관(habit)이다. 습관(habit)에서 "h"를 잘라내면 "abit(조금)"이 남아 있다. "a"를 제거해면 "bit(약간)"이 남는다. "b"를 제거해도 "it(그것)"은 여전히 남아 있다. "i"를 떼어낸 후에는 "t(유사발음-tea)"가 남는다. 그리고 만약 차(tea)를 마시는 것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면, 아직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빼앗으려 한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이 되었건 지나치게 할 수 있다. 감자나 콩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것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매우 해로울 수 있다. 절제의 진정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해로운 것은 완전히 절제하고, 좋은 것은 적당하고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 정말 일리가 있지 않는가? 절제의 정의에는 또한 선하고 건전한 종교도 포함한다.
폴 하비는 자신의 뉴스 기사글에서 사람이 자신의 장례식을 연기할 수 있다는 인상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올바르게 먹고, 더 오래 살기'라는 제목으로 하비는 장수에 관한 서양의 설문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이 연구는 캘리포니아주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의 사망 증명서를 재림교인들이 아닌 사람들과 비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음주, 흡연, 카페인 사용을 금하는 재림교인의 기록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 결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의 기대 수명이 다른 캘리포니아 주민들보다 거의 6년 정도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재림교인은 모든 유형의 암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70%,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68%, 결핵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88%, 폐기종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85% 더 낮다. 재림교인은 뇌졸중이 46%, 심장병이 60% 더 적다. 금주 생활의 부산물인지, 사고 발생률도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다시 한 번 창조주께서 성경에 제시한 실용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원칙에 우리가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 모두의 삶에 수년을 더할 수 있다는 든든한 진리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속았다고 느끼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장수와 행복의 비결을 알려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아직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는 우리의 모습이 그와 같을 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깨끗하신 분이십니다. 적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요일 3:2, 3 / 쉬운성경).
당신의 삶과 평온을 연장할 수 있는 영감의 처방을 받아들일 믿음과 용기가 있는가? 현재와 영원 모두를 잘 준비할 수 있는 이 과정을 지금 바로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